본문 바로가기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세를 다시 고치게 되던 이유를 하루 동안 기록해봤다

📑 목차

    나는 의자에 앉을 때마다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는 일을 반복했다. 몸이 문제라고 단정했지만, 하루 동안 ‘자세를 고치고 싶은 순간’만 따로 적어 보니 원인은 의외로 환경 쪽에 있었다. 크게 바꾸지 않고도 덜 불편해진 과정을 기록했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자세를 다시 고치게 되던 이유를 하루 동안 기록해봤다

    1. 앉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하던 순간

    나는 책상 앞에 앉는 순간부터 몸이 바쁘게 움직였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면 허리가 먼저 긴장했고, 어깨가 올라간 걸 느끼면 바로 내렸다. 다리를 나란히 두었다가도 30초쯤 지나면 한쪽 발을 뒤로 빼고 싶어졌다. 나는 그 동작들이 너무 익숙해서, 마치 “앉는 절차”처럼 굳어 있었다.
    그날 아침에는 일부러 그 절차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 보면서, 내가 언제 자세를 고치려는지 시간을 적었다. 나는 9시 12분, 9시 19분, 9시 27분에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특히 9시 19분에는 이유가 없는데도 허리를 한 번 세게 세웠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왜 지금 고쳐 앉았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길게 붙잡았다.
    나는 보통 이런 질문을 오래 들고 있지 않는다. 그냥 “내가 자세가 안 좋아서 그래”라고 결론을 내리고 끝낸다. 그런데 그날은 결론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내가 고쳐 앉는 장면을 ‘나쁜 습관’이 아니라 ‘신호’로 보기로 했다. 몸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는지, 하루만이라도 기록해보고 싶었다.

    2. 몸의 문제라고 단정했던 나의 습관

    나는 자세가 흐트러지는 이유를 늘 내 몸에서만 찾았다. 허리가 약해서, 코어가 부족해서, 오래 앉아서, 운동을 안 해서 같은 말이 가장 편했다. 그 말은 빠르고 명확했지만, 이상하게도 해결은 늘 제자리였다. 나는 자세를 한 번 고치고 나면 잠깐 좋아진 듯하다가, 다시 똑같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그날은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몸을 고치지 말고 환경을 보자고 마음먹었다. 스트레칭을 더 하거나 의식적으로 허리를 세우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세를 고치고 싶어지는 순간마다 짧게 메모를 남겼다.
    내가 적은 메모는 거창하지 않았다. “9:19, 모니터가 약간 어둡게 보임”, “10:03, 발이 바닥에 애매하게 닿음”, “13:40, 창 쪽 빛이 눈에 걸림” 같은 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적는 순간에도 자꾸 몸을 탓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내가 예민한가?”라는 말이 자동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예민함’이라는 단어도 잠깐 보류했다. 그 단어를 쓰는 순간, 관찰이 끝나버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불편을 없애기보다, 불편이 생기는 조건을 찾는 쪽으로 하루를 써보기로 했다.

    3. 같은 의자인데 느낌이 달랐던 시간대

    나는 하루 동안 같은 의자에 세 번 앉았다. 오전, 오후, 밤이었다. 나는 의자가 같으니 느낌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록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전에는 괜찮았는데 오후에는 허리가 먼저 당겼고, 밤에는 다리를 꼬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처음에는 컨디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적어둔 메모를 다시 보니 오후에는 창가 쪽 빛이 강해졌고, 밤에는 방 전체가 어두워지면서 책상 위 조명만 상대적으로 밝아졌다. 나는 빛이 바뀌는 것과 내 자세가 바뀌는 것이 같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연결했다.
    오후의 나는 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 미세함이 문제였다. 큰 불편은 아니었지만, 그 미세함이 누적되면 나는 결국 허리를 세게 펴는 방식으로 “리셋”을 했다. 밤에는 화면 밝기와 주변 어두움의 차이 때문에 눈이 먼저 피곤해졌고, 그 피로를 몸이 대신 받아주는 듯했다.
    나는 의자가 아니라 ‘시간대가 만드는 환경’이 내 몸을 건드리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의자라는 사실이 오히려 헷갈림을 만들었고,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몸만 탓했을 것 같았다.

    4. 시선이 흔들릴 때 자세가 먼저 무너졌다

    나는 내가 자세를 고치는 순간을 자세히 떠올려 보니, 대부분 ‘집중이 끊긴 순간’이었다. 집중이 끊기면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자세를 고치면 다시 집중이 되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자세 교정이 집중력의 스위치라고 착각했다.
    그날은 집중이 끊기는 이유를 자세보다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모니터를 조금 더 들여다보려는 순간이 자주 생긴다는 걸 발견했다. 글자가 흐릿해서라기보다, 화면의 반사가 미세하게 거슬려서였다. 특히 흰 배경 문서를 볼 때는 창 쪽 빛이 화면 위로 얇게 겹쳤다. 나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채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고, 고개가 앞으로 가면 허리가 따라 갔다.
    나는 모니터를 새로 사거나 높이를 크게 바꾸지 않았다. 대신 그날은 아주 작은 조정을 했다. 모니터 각도를 1~2도 정도만 낮추고, 커튼을 반쯤만 내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싶은 변화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작은 변화가 내 몸의 ‘리셋’ 빈도를 줄였다. 나는 허리를 세게 펴는 대신, 그냥 그대로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자세를 고치지 않았는데도 몸이 덜 요동쳤다. 그때 나는 “자세가 무너지는 이유가 몸이 아니라 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꽤 진지하게 하게 됐다.

    5. 바닥에 닿는 발의 위치가 주는 신호

    내가 고쳐 앉는 행동 중에서 가장 자주 하는 건 다리였다. 다리를 꼬거나, 한쪽 발을 의자 다리 사이로 넣거나, 발끝으로만 바닥을 밀었다. 나는 이게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록을 하다 보니 조건이 있었다. 발이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을 때 그 행동이 늘어났다.
    의자 높이는 크게 높지 않았는데, 내 자세가 조금만 뒤로 가도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살짝 떠 있었다. 그때 내 몸은 균형을 맞추려고 허벅지에 힘을 주고, 그 힘이 허리로 올라오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그 느낌이 싫어서 허리를 펴거나 엉덩이를 앞으로 당겼다. 그 행동이 반복되면 결국 “앉는 게 불편한 날”이 됐다.
    나는 대단한 발 받침을 사지 않았다. 그날은 집에 있던 두꺼운 책 한 권을 발 아래에 두었다. 발바닥이 바닥을 잡는 느낌이 생기자, 허벅지 힘이 빠졌고, 허리를 세게 펴는 행동도 줄었다.
    나는 이 변화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치워보고 다시 앉아 보기도 했다. 책을 치우면 10분 안에 다리가 움직였고, 책을 다시 두면 움직임이 늦춰졌다. 나는 이 실험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줬다. 완벽한 해결이 아니라, 덜 불편해지는 방향이면 됐다.

    6. 자세를 고치지 않기로 했을 때 생긴 변화

    나는 그날 ‘자세를 바르게 해야지’라는 생각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불편해지는 조건을 보자”로 문장을 바꿨다. 이 작은 문장 교체가 내 행동을 바꿨다. 나는 몸을 바로잡는 대신 주변을 한 번 더 보게 됐다.
    키보드가 약간 비틀어진 날에는 손목이 먼저 긴장했고, 손목이 긴장하면 어깨가 올라갔다. 의자가 책상에 너무 붙어 있으면 팔꿈치가 불편했고, 팔꿈치가 불편하면 허리가 뒤로 밀렸다. 나는 그 연결을 ‘설명’으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메모로만 남겼다. “14:05, 키보드가 비스듬함. 14:12, 어깨 올라감.” 이런 식이었다.
    나는 그 메모를 보면서도 교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날의 목표는 “바로잡기”가 아니라 “발견하기”였기 때문이다. 발견만 해도, 다음 날 내가 자동으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걸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억지로 고치면 며칠 못 가지만, 스스로 원인을 알아차리면 오래 간다.
    그날 저녁에는 내가 얼마나 자주 내 몸을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몸을 고쳐야만 괜찮아진다고 믿었고, 그래서 불편할수록 더 몸을 탓했다. 그런데 환경을 보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니, 몸을 탓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 차이가 나에게는 꽤 컸다.

    7. 몸이 아니라 환경을 의심하게 된 하루의 끝

    하루가 끝났을 때 나는 내 자세가 극적으로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가끔 허리를 고쳐 앉았고, 어깨를 한 번 돌렸다. 다리도 완벽하게 가만히 있지는 못했다. 다만 그 행동이 나올 때마다 예전처럼 “내가 문제야”라는 결론으로 곧장 뛰어들지 않게 됐다.
    나는 그날의 메모를 다시 보면서, 고쳐 앉는 순간들이 꽤 일정한 조건에서 발생했다는 걸 확인했다. 화면이 미세하게 반사될 때, 주변 조도가 갑자기 달라질 때, 발이 바닥에서 어정쩡할 때, 키보드가 조금 돌아가 있을 때. 나는 그 조건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이렇게 많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기록은 자세 교정 성공담이 아니다. 나는 운동 루틴을 만든 것도 아니고, 비싼 의자를 산 것도 아니다. 나는 하루 동안 내 몸을 몰아세우지 않고, 환경을 의심해 본 것뿐이다. 그 작은 방향 전환이 내 마음을 덜 지치게 했다. 불편함이 생기면 나를 고쳐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드니,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덜 무겁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의자에 앉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발 아래 책을 먼저 찾았다. 커튼도 어제 내린 정도로 맞췄다. 나는 자세를 “잡으려” 하지 않았는데도, 앉아 있는 첫 느낌이 어제보다 덜 날카로웠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완벽하게 편한 의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불편을 조금씩 줄여가는 사람 쪽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 하루의 기록은, 내가 앞으로도 몸만 탓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작은 근거가 됐다.